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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짐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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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밑에 숨은 검은 머리 짐승들, 그들은 모순적이게도 매일같이 독립을 꿈꾼다.
그들의 몸집이 커질수록 편안했던 집도 떠나야만 하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아직 그늘 밑이 편한 그들에게 철저히 모른 척하고 싶은 무언의 압박감이 밀려온다.
결국 쫓기듯 나온 사회에서 그들은 혼자 남게되지만, 그 외로움은 독립으로 간주되지 못한다.
평가받아야 하는 우리들의 독립, 그 고귀한 독립을 위해 우리는 지금도.
우선 독립의 형태를 살펴보자.
독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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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살면서 마주하는 물음표들을 모두 분해, 나열, 재구성하고 결국 마침내 독립을 해낸다. ] 고 한다.
[ 물음표는 ‘촉매’로서 내 안에 불안을 키운다. 우리는 불안한 감정을 억지로 소화하며 성숙해져가기 때문. ] 이라고 한다.
분명한 건 물음표는 언제나 고통을 수반하고, 뒤따라오는 물음표의 고통은 배로 커진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물음표’는 나로부터 비롯된다.
먼저 ‘우리’로 부터 시작된다.
- 너희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왜?”
그리고 ‘너’로 이어지며
- 너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왜?”
결국 ‘나’를 향하는 물음표는
- 나는 독립해야 한다
“왜?”
독립점을 찍기 위해 나와 너의 구분을 시작한 우리는 성장통에 몸부림친다.
모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독립의 정립를 새로이 하자.
1. 독립은 나에게 이롭지 않을 수 있다.
2. 그렇지 않으려면, 나를 책임지려면, 순응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3.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4. 함께임에도, 내가 나임을 홀로 주장하는 것이 가능할 때까지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5. 계속해서 생각의 꼬리를 물자.
6. 그 끝엔 내가 있을 것이다.
7. .
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해내야 하는 진정 당위적인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그것들의 존재 가치를 파악해 삶을 영위하는 것에 지친 우리들의 짐을 덜고자 한다.
짧은 글들
- 돌을 덮은 깃털들
- 해가 갈수록 멍멍이들은 칭찬에 목매게 되고 세상은 인색해져간다.
- 젖은 별
- 아침이 붉은 외투를 걸치고 저 높은 동쪽 언덕 이슬 밟고 넘어와.
- 파인애플셔츠를 입고 군모를 쓴 증열이
- 네달만에 생리다. 내 자궁은 그래도 제 기능을 하나보다.
아프네
- 새하얗게 타버린 내 머리 속 새까매진 기억들
- 물방울이 창문을 치고 습한 택시 안.
내 머리카락들은 어깨가 쳐지는 중
- 선아가 나보고 왜 이빨에 충전기를 꼇녜
- 맥주 주문에 까여서 서운해하는 부모와 초딩 둘
- 아저씨 손을 꼭 붙잡은 등굽은 할아버지
- 난 들꽃이란 말이 항상 부속요소같은 단어같아 뭔가 들러리 꽃 같은 느낌
- 소심하다 중심하다 대심하다
- 이상한 사람이 돼보자
- 진실과 성실은 동의어일 수 있다
- 바닥에서 팔딱이던 검정 붕어가 봉지였던 건에 대하여_
그리고 그것을 알기 전후의 내 태도가 일관적이었던 이유를 탐색
; 나에겐 생명의 가치는 크기로 통용될지도
- 대전제의 중요성- 신은 가장 먼저 공포를 창조하셨다.
- 나뭇잎 그림자도 넘기지 않는 철옹성이 대문짝
- 흐려진 선아의 실루엣 돌아다니는 검정 십오주차 러너 초파리 세명
-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집을 삼킨 전아현
- 마루 위 행복한 개돼지
- 삼심대의 님페트는 청순한가.
- A의 변신
- 일반인 a로서 살아가는 우리, 과연 변신, 혹은 진화한 우리의 형태는?
- 요조, 다자이 나 또한 평생 난제를 풀 수 없는 생활 무능력자
그리고 평생 주어진 것들로 자기위로할 선택받은 유다이다.
- 잊어선 안되는 "소리들"에 대하여
- 예술가의 데이터들이 안전하게 보존되기를 바라며.
- 던지면 맞아죽을 두꺼운 책 (전설의 법대생 전공책 정도이려나)
정상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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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
;결혼한 이성애 부부와 그들의 생물학적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만을 자연스럽고 이상적이며 건강한 가족 형태로 보는 사상을 일컫는 말.
개똥같은 단어의 집합체, 그리고 정의
내가 이에 대해 개똥이라고 수식한 이유는?
본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현대 사회의 문화·정치·경제 등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예를 들면 국가의 복지 정책이 '정상가족'을 전제하며 이러한 생애 주기에 맞추어 지원되는 식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정상가족’에 대한 수호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형태의 가족을 비정상으로 보고 ‘결손가족’으로 병리화하는 데 기여한다. 나아가, 다양한 가족 형태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주로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미혼모·부가족, 이혼가족, 동거가족, 입양가족, 무자녀가족, 동성부부가족 등이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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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남성이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고 여성이 양육과 가사 노동을 전담하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기초하여 가부장적 성역할과 남성 중심의 가족 위계를 정당화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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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여러 가지 사회 운동의 흐름이 존재하는데,
가족 제도 자체를 문제시하면서 가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추구하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다 급진적인 운동이다.
이들을 과연 나는 옹호할 수 있는가?
나는 정상가족 범주 재정립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적정선의 정상가족은 어떤 형태인가
그 형태는 학자들이 말하는 시공간 특정적이지 않은 이상적인 가족에 부합하는가
노숙자가 지나갈 때, 숨을 안 쉰 이유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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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냄새에 예민한 사람인 줄 알았다.
이것은 아마 매일 숨쉬며 냄새의 종류에 너무 박식해져버린 탓.
항상 말하지만, 존나 알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몰라서, 순박해서, 호구같아서, 구린내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
밤 10시를 넘겨 타는 5호선 열차의 냄새,
시장으로 향하는 새벽 5시의 3217 버스 냄새,
새벽 1시 길가에 나앉은 크고 빨간 귀를 자랑하는 중년의 냄새.
여름이 되가는 요즈음, 알고 싶지 않은 나는 너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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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예민해진다.
파이아키아가 말하길, 인간은 무릇 냄새의 경험이 기억으로 남게 된다고 한다.
이어서 인간이 경험론적 존재인 것도 거기서부터 파생된다고도 했다.
내가 아는, 내가 맡은 기억이 너무 많아졌다.
이러다 21세기 박물관을 그리워 할 봉미선이 되어버리겠지.
저는 햇빛을 먹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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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알레르기 증상에 대해 묻는 가정통신문이 있었는데-
그리고 그 종이의 빈칸을 채우지 못하는 내가 서운했는데-
선천적 결핍에 대한 서운함, 즉 선망은 아마 결핍 이후 받을 수 있는 타인의 의무적 애정이었을 것입니다.
때마침 햇빛을 보면 코가 간질간질
가끔은 진짜 재채기님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발병한 햇빛 알레르기.
그때부터 이 특이하고 소중한 알레르기에 대해
소개하고 자랑하기를 반복하며 애정 수집에 열을 올렸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해가 뜨고 지기를 그저 지켜보며 넷상에서 관심을 캐 먹던 저는
알레르기가 완치된 지금도, 태양을 등지고 있습니다.
카프카를 밟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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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 길, 뒤집힌 카프카를 보았다.
차례대로 머리가 벗겨진 할아버지도 지나갔는데, 요지로 열렬히 이를 쑤시고 계셨다.
문득 아저씨가 그를 밟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아아, 나 또한 혐오의 시대를 살고있던가.
고슴도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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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딜레마에 대하여
거리 조정을 중요시해야 한다. 무엇이든.
근접한 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결국 상대에 대해 모두 파악해 낸 듯한, 오만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반면에 멀리 떨어진 거리는 상대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가까워질 수 없는 운명에 좌절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조장한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아주 적절히 이를 비유하고 있다.
가시 때문에 관계를 일정 거리 이상 확장할 수 없던 고슴도치들은, 가시 덕분에 그들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에 대해 필요 이상의 기대를 하게 되었을 때, 상대에 대해 부푸는 감정들을 억누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딜레마’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을 가리키지만,
바람직하지 못할지언정, 그 누구도 딜레마의 해결책, 혹은 차선책조차 제시하지 못한 채 오랜 기간 해당 문장이 언급되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해당 난제는 공공연한 사회관계망 형성의 기반이 되는, 필수적인 법칙인 것이 아닐까?
가변은 불가변
불가변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당장에 불가변적인 것을 생각해보자면.
철학적 접근으로 ”사랑“이 있겠지만.
지성체가 없는 세상에 사랑이 있겠는가?
(애초에 내가 없는 세상에서의 사랑은 궁금하지도 않다.)
반대로
가령, 완벽하지 않은 불가변함. 이란 문장이 있으면.
불가변의 반대 선상에 놓인 가변이 등장해버리는데.
차라리 가변적임이 불가변한 것이 오히려 설득력이 생긴다.
언제든 변수를 생각하는 것이 안심이 되는 거지.
인간은 무한한 자신의 호기심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 어떻게든 편견 가득한 잣대로 이것저것 정의내리곤 하는데,
이 악습을 끊고자 하는 덜 야만적인 인간은 가변의 소중함을 의식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지 않을지.
답을 구해가기 보단, 새 전제를 가정하고 이에 따른 깜찍한 컨텐츠가 도출되기를 바라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곧 시작될 끔찍하게 지루한 인생을 회피하려면 상상하는 습관을 하루 빨리 몸에 익혀야 한다.
죽을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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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토마토
를 표현하고 싶어도,
영어도 일본어도 마땅한 미래형 동사 형태가 없다.
죽을 예정인 토마토
죽은 토마토
토마토는 죽을 것이다
토마토는 죽는다
토마토, 죽을 예정인
등등 뿐
죽을 토마토는 표현이 안돼.
그래서 한국 사람이 사서 걱정하는 건가싶다
미래에 대해 괜히 논하지말자.
받는 이, 佛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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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年4月10日水曜日
筑波에서, SAZA에서 .
“필경 인간에게 호소하는 일은 헛일이다.”
그럼, 정말 그럼, 호토케님,
당신들은 용서받은, 모든 죄를 달게 받은,
부처와 같은 존재라면, 혹시 그렇다면,
진리를 아시나요?
정말로 신뢰는 대다수의 세상에서 죄인가요?
사실 저는 지금 당장에는 그 답을 절대로 알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죄를 짓고, 평생의 죄를 다 짓고, 다시 벌을 받고, 용서받는 그 날에,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신다면 말이죠.(笑)
-全娥賢-
ps.
저는 모르고 싶습니다.
정말로 모르고 싶습니다.
평생 난제를 풀 수 없는 생활 무능력자로서
저는 요조의 분신에게 공감합니다.
일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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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은 ‘권력의 다원화’일지도.
‘정통의 다원화‘는 미술에 대한 다층적이고 심도있는 이해를 가능케.
-세잔의 사과, 전영백
동시대 미술 속 탈장르를 포함한 여러 장르는 더 이상 하나의 사조, 지식 권력의 편향적 집중을 벗어나, 포화상태의 혼합매체 덩어리로의 변신을 끝낸 상태일지도.
모두가 권력, 재능을 고루 받았다는 탈식민주의적 사고 아래 권력의 다원화.
쓰읍
라기 보단 추가적으로 ’자본주의‘를 고려했을 때, 권력의 다원화 <<추구>>가 현 아트월드 주민들의 숙명일지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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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만들기 레고세트를 샀는데,
분명 만드는 방법도,
견본도 있는데,
레고를 쌓는다던가 겹친다던가 하지않고,
조각이 100개 있으면 딱 4개만 써서 집을 만드는거지.
벽에 두 개, 지붕에 두 개.
그럼 집이지.
눈뜬 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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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쌓인 그것들
그 많은 것 중 그나마 기억나는 건 그것들의 종말 이야기
분명 미간을 찌푸리고 눈핏줄이 터질 때까지 청춘을 바친 글자들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모두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장지에 먹을 뿌리고 점차 검은 점이 커지듯
기억 속 검은 구멍이 자리를 넓힌다
새하얀 머리 속 새까매진 기억들을 되찾을 수 없다
난 현재를 살아가면서 또다시 과거를 검게 칠한다
뒷장의 글자들이 자간을 좁힐수록 앞장은 찢겨져 책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듯 하다.
+ 책갈피가 꽂히는 기준은 무엇일까?
朋哉 : 보통 다자이상이라고 해, 오사무라고 부르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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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자본가의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 준다는 점에선 우리든 프롤레타리아트든 마찬가지야.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사는 게 배반이라면, 투사는 어떤 신선이 되는거지? 그런 말이야말로 극단주의라는 거야. 소아병이라는 거야.
프롤레타리아트 하나에 대한 공헌, 그걸로 충분해. 그 하나가 고귀한 거야. 그 하나만을 위해 우리는 힘껏 살아 있어야 해.
그리고 그게 훌륭한 플러스의 생활이지. 죽다니 바보짓이야. 죽다니 바보짓이야.」
→ 그래, 당장에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직시해야지. 애초에 “할 수 없는 것”을 우상으로 점쳐두면 어떡해.
아오이 너가 기준을 높게 잡은 거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자신의 立場에 자위 중 인거 잖아.
본인의 우울을, 제 흥에 겨운 자살 퍼포먼스 계획을 정당화하고 사회 구조의 탓으로 전부 돌려버리려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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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모가 말한다.
“너는 얼굴이 못생겼으니 애교라고 잘 부려야지.
너는 몸이 허약하니 마음이라도 착해야지.
너는 거짓말을 잘하니 행실이라도 올발라야지.”」
→ 현재도 이런 말을 실제로 뱉는 어른들이 꽤 자주 보이는데, 이는 사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노인네의 팁을 가장한,
“이기적인 개인이 뭉쳐 본인들의 욕망을 실현•정당화시킨 추악한 실정법”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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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포장마차를 나와 전차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 시들시들한 나쁜 꽃을 세 사람에게 건넨 걸 아프도록 후회했다.
느닷없이 길가에 쭈그리고 앉았다. 가슴에 십자를 긋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격렬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일본어 두 마디를 속삭였다. “피어라.피어라.”」
→ 이름 모를 누군가를, 스쳐지나간 인연을 축복하고 행복을 빌어주다니.
아직(아마 평생) 나는 평화의 끝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런 고결한 야만인의 신성함은 평화를 완성시키는 데에 필수불가결적이지 않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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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은 봄?」
→ 과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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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다자이 유상무
아 조지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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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원한 행복’을 묘사하려는 시도는 늘 실패했다. 행복이 영원해지는 순간, (영원은 끝없는 시간이다.) 대비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시간이,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가치” 자체가 끝없이 추락한 그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한들, 그것이 여전히 우리에게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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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대비’라는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행복을 묘사할 수도, 심지어 상상할 수도 없는 듯하다.」
→ 내가 알고 있는 쾌락 그 이상의 것을 천국에 빗대는 우리는 결국, 그 너머를 모르기에 가장 그에 근접할 것으로 추측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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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아는 가장 큰 쾌락을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극대화해 천국을 상상해보고, 음미해볼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거창한 행복이 아닐 것이고, 풀 죽은 우리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와 지옥을 상상하겠지.
→ 시간이,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가치” 자체가 끝없이 추락한 그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한들, 그것이 여전히 우리에게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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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의 천국으로 넘어가보자. 거기는 남자 한 명당 미녀 77명이 딸려 있는데, 여인들은 남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모두가 동시에 악을 써댄다. 악몽이 따로 없다.」
「끊임없이 “모든 것은 밝고 아름답다.”고 장담하는 영성론자들도 마찬가지다. 지각 있는 사람이 혹하기는 커녕 참고 들어줄 만한 내세 활동도 그려내지 못한다.」
「“뛰고, 춤추고, 장난치고, 백포도주와 적포도주를 모두 마시고, 황금 왕관을 세는 것 말고는 온종일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어라.”
듣기만 해도 지겹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조지 선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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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새상은 전쟁 중이고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고결한 야만인이 한때 존재했다면 모를까,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은 문학에서 비문명인을 이상화한 개념으로,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무구한 인간성을 상징한다.]
세상은 평화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세상은 존재 가능성을 희미하게 인식할 뿐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무엇인가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자세히 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 무엇인가[평화]의 긍•부를 따지기엔 그저 야만인인 우리는 절대 불가능에 가깝다. 아직, 우리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하고,
이후 그것을 알더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겪을 수고로움이, 끝내 손에 쥘 평화라는 게 결국 우리의 “이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니 다시 리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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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다수의 유토피아 창조자들은 치통만 없어지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는 치통 환자들과 비슷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던 것을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완벽한 사회를 만들려 했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보다는 인류에게는 마땅히 나아가야 할 노선이 있고, 이를 위한 대전략도 마련되어 있지만, 예언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고 말하는 편이 더 현명했을 거다.
완벽을 상상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공허함을 드러낼 뿐이다.」
→ 결국 자신이 짜낸 이세계를 마음대로 부풀리고, 내세워보아도 생각보다 심심한 행복•평화에 실망한다.
동시에 그들은 끝까지 이상적 세계에 대한 실존만큼은 지키고자, 그들이 선택하는 것은 끝내 자신의 능력 부정, 본인의 상상력 미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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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을 창조하려는 순간,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계몽된 후이넘보다 악취 나는 야후가 발전 가능성이 더 많다는 인상을 풍길 뿐이다.」
그녀들의 말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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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혜
; 침에 발린 말 하네
20240927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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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아
; 영웅대중
20241014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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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아
; 같이 갈라?
2024101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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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희
; 보호방지 필름
20241022 19:28
오렌지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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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번째 감기를 얻어내며 건강의 중요성에 뼈저리게 알게된.
미친듯한 고열를 이마에 얹고 엄마의 컨베이어 벨트에 얹혀 닭장에 들어가는 그 땐
정말 너무 서러워서 당장 친구 가족 친척 모두 불러 내 아픔을 자랑하고 싶었다.
유튜브 영양제 광고를 보면 스킵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하지만 난 아직 철부지 이십한살.
영양제를 구경하다가도 새끼발톱에서 부터 번지는 gui cha nism증상으로 인해
스레빠를 끌고 편의약국 내 가장 비싼 구구프로 오렌지 착즙 액체를 수혈중.
아파서 뒤지긴 싫은데
미래의 2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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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자식아 이제부터 널 이세라고 부르마
나는 지금 수업을 듣고있어 너무 재미가 없어서 이 글을 쓴다.
이세 너는 몇 살에 이 글을 보고 있을까.
이 글이 다시 펴질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미래가 두렵지만,
일단 남들 다하는 가정꾸리기 그까이꺼 내가 못하나 싶다.
아 수업이 끝나간다.
다음에 또 오마 이세야.
엄지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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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은 항상 어루만지는거같아
무슨 가방을 잡고있을 때도 엄지손가락을 왔다갔다 계속 뭘 만지듯이 움직여
내 앞에 있는 누군가의 어머니도 자기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꽃무늬가방을 계속 만지고있어
손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지하철이 익숙하지 않은 듯 앞만 보고 눈만 껌뻑껌뻑
방금은 천장을 저끝부터 여기까지 훑어보시고는 계속 사람들과는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시는거같고
그냥 철렁한다
걸어서 민재속으로_(그녀의 잠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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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 스티커가 남아있는 것도 좋다.
-220527 1:30 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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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헤세를동부리탄으로해야
뭐라고?
담배를으에룰러해야그러으
뭐라고?
아니야
-220621 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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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웃겨
응?
응?
-220727 2:34 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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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 통화했어?
응?
통화해스어?
-220729 3:18 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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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읋ㅎㅎㅎㅎㅎ
응?
가발
가발?
가발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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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3 3:56 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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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알았어 갑자기
응?
-220806 4:50 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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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잇쨔입ㅉ
응?
끄덕끄덕
-220905 3:21 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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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치밥!(시발! 일지도)
응?
케
응?
케밥
-220913 23:30 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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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였어
ㅃ쁘뜻ㅂ 크으으어
-220913 12:23 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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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그게 크기가 맞으니까 오어 그게 둘이 딱 맞아떨어져서 괜찮으니까 그거로 하야 어 그거
ㅋㅋ뭐?
(눈뜸) 응 그게 딱 맞아떨어지니까 그거로 하자
-221027 11:49 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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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했는데 어? 내가 -...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221110 06:01 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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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야 돼 지금도 잠옷이 안 들어 본 거면 그래야 돼
-221116 01:08 조민재
현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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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널 처음 봤을 땐 복도에서 뒤져라 뛰어다니던 모습 그대로라 안심했음.
넌 나에게 뭔가 동심이라던가 추억을 연상케하는 존재 그대로 존재해줬었음.
(아파트 숲 사이로 기어가던 너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것도 그 때문임.)
근데 어느새부턴가 너가 현재를 걷는 기분이었음.
나한테 과거를 보여주던 너가 성장하니까 기분이 묘했음.
물론 니 성장은 나에게 긍정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음.
그리고 너한테도 딱히 좋아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웠음.
괜히 성장통이란 말이 있는게 아니듯 넌 나에게 증열이급(하이클래스)에 가까운 안쓰러움을 느끼게함.
그래서 널 피하게 됨.
결론적으로 성장을 해내고 웃고있는, 엄청나게 성숙해져서는 다시 나에게 동심을 선사해줄 너를 마주하고 싶었음.
하지만 그러기엔 넌 너무 쉽고 빠르게 썩어가더라.
그리고 마침내 노래방창문에 비친 공산품 빡빡이한테선 어떤 동심도 엿볼 수 없었음.
내주변 첫 빡빡이가 태어났을 땐 뭔가 기념비적이면서도 마음이 헛헛했는데,
넌 그저 아주 평범한 내주변 군인472번이 된 것같아서 더 안타까웠음.
넌 어느샌가 나한테 안타깝고 안쓰러움을 상징하기 시작함.
새벽마다 널 곱씹기 시작했음.
어쩌다, 어쩌다. 결국 너도 새벽의 나를 깨우는구나.
난 나에게 이른 아침을 보여주는 친구에게 큰 의미를 두는 병이 있음.
기적인줄 아셈.
무엇보다도 난 너에게 얻은 것들이 꽤 많았음.
우리 나이엔 슬슬 대가없는 하루를 함께 보내긴 힘든데 넌 그걸 해내는 몇 없는 사람임.
넌 여름엔 에어컨을 끼고 살던 내가 습한 열기가 불어도 옆구리가 시리면 괜히 연락처를 뒤적거리면서 자전거에 돈을 쓰게 만듬.
클럽을 갈 때마다 지나는 홍대 오술차는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는 나에게 알코올이 주는 유쾌함을 연상케하고 덕분에 겨드랑이에 자신감을 끼게 됌.
여튼 그럼.
더 있지만 널 더 이상 칭찬해주기 싫음ㅋ.
난 이렇게 또 하나의 빡빡이를 핸드폰 즐겨찾기에 추가함.
난 책임지고 너의 못남을 눈감아주겠음.
너의 고통이 바다에서 흐려지기를 빌어주겟음.
다음은 너의 기프티콘 제공 건에 대하여 곱씹겠음.
내가 그것때문에 얼마나 뒤지게 골머리를 썩혔는지 원.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진 마.
이미 니 몸은 커졌고 지나온 구멍은 더 이상 니 몸을 구겨도 들어가지 않아.
변화를 받아들이자. 몸엔 좋지 않겠지만.
행복함을 완벽히 연기할 수 있을 때면 이까짓 성장통은 거스러미조차 만들지 못할꺼야.
눈주름을 더듬는건 괜찮아. 나도 과거를 엿보는 병은 아직 고칠 생각이 없어.
24살의 미숙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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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엄마가 언니를 낳은, 엄마가 엄마가 된 나이
그 때가 되면 꼭
24살의 미숙이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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